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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연극사상 최초의 흑인 작가 '테렌티우스'카테고리 없음 2024. 2. 1. 12:17반응형
1. 테렌티우스
플라우투스 이후, 가장 중요한 로마의 희극작가는 테렌티우스이다. 플라우투스의 작품이 감칠맛이 나고 널리 인기를 끈 반면, 테렌티우스는 등장인물의 성격과 미묘한 표현과 우아한 언어 등에 강조를 두었다.
플라우투스처럼 테렌티우스도 대부분 그리스 희극을 모델로 삼아 자신의 희극을 썼다. 그리스 희극들을 표절했다는 비난이 일자, 테렌티우스는 "표절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기록을 남겼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제라도 재차 표절을 서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실상 그리스 희극을 개작하는 것을 당시 로마의 극작가들에게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러므로 테렌티우스에 대한 이와 같은 비평은 다른 이유, 이를 테면 그의 재능을 시기해서라든가, 또는 그가 사회적으로 급부상하는 것을 질투하는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두 편의 그리스극에서 뽑아낸 플롯들을 가지고 한 편의 새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테렌티우스 고유의 수법이다. 테렌티우스는 자신이 직접 담당한 서사를 통해 자기 작품에 대한 응호를 했다. 이럼으로써, 그는 서사를 통해 작품 내용의 배경지식이나 플롯의 줄거리를 제공해 주던 전통적인 서사 이용의 관행을 깬 셈이다.
테렌티우스의 생애는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이다. 그는 카르타고 태생이며, 노예의 신분으로 로마로 건너왔다. 그의 이름자에 사용된 '아페르'는 그가 아프리카인임을 가리키며, 그렇다면 그는 서양 연극사상 최초의 흑인 극작가가 되는 셈이다. 그의 주인이었던 한 원로원 귀족은 그에게 극작가 수업을 받게 해 주었고, 적당한 때를 보아 자유인으로 방면해 주었으며, 당대 최고 문필가들과 철학자들이 속해 있는 문학 서클에 그를 입문시켰던 것으로 추정된다.
테렌티우스가 상류층과 연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희극 곳곳에서 나타난다. 세련된 라틴어의 구사라든가 상류층의 절묘한 유머감각 등을 적재적소에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아도 이를 입증할 수 있다. 그가 사용한 플롯은 플라우투스의 그것보다 한층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다. 그는 두 인물을 비슷한 로맨스 상황에 넣고 각자의 다른 반응을 살피는 등 이중 플롯을 자주 사용한다. 그의 작품들은 식자층에 의해서 찬미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일반 대중들은 이보다 훨씬 생동감 있는 여흥거리를 선호했다. '장모님'이라는 자신의 작품의 경우 세 차례나 공연을 거듭한 끝에 겨우 관객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 두 번의 공연 때에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거의 서커스 수준의 여흥거리에 관객을 뺏기고 말았다.
테렌티우스의 플롯은 플라우투스의 그것처럼 복잡하지만, 테렌티우스의 문체는 플라우투스와 달리 훨씬 문학적이었고 덜 과장된 표현들이었다. 테렌티우스의 '포르미오'라는 작품은 서로 사촌 간인 안티포와 패드리아가 자신들의 사랑에 대한 양가 부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두 젊은이들은 내숭스러운 식객인 포르미오와 극적인 우연의 도움을 받게 된다. 플롯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과 전형인물의 사용 등은 플라우투스의 '메네크미'와 흡사하지만, '포르미오'는 훨씬 덜 파르스적이고 야단법석도 덜하다. 대부분의 유머는 말로 이루어지며, 신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요소는 축소되어 있다. 말다툼이 많은 관계로 테렌티우스의 작품은 플라우투스의 그것보다 덜 연극적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플라우투스의 대화의 대부분이 노래로 처리되는 반면, 테렌티우스의 대화는 말로 처리된다는 점이다.
중세와 르네상스와 같은 후대에는 테렌티우스의 작품이 훨씬 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다른 로마시대의 극작가들이나 그리스의 극작가들의 작품보다 테렌티우스의 작품들이 중세 수녀원이나 수도원,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대학에서 문학 작품의 모델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간데르스하임 수도원의 로스비타는 '기독교인판 테렌티우스'라고 불렸다. 테렌티우스가 구사한 라틴어의 간결체와 작품에 나타난 높은 도덕감 등은 교수와 학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테렌티우스는 모두 여섯 편의 작품을 썼는데, 모두 현존한다. '안드리아', '장모님', '자책자', '환관', '포르미오', '형제들'이다.
테렌티우스 사후 희극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현존하는 작품이 전무한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테렌티우스 사후에 쓰인 희극의 질이 하락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2. 테렌티우스는 인류 최초의 흑인 극작가였을까?
로마시대의 연극 전반에 걸쳐 학자 간의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중에서 테렌티우스라는 극작가의 인종적 배경에 대한 논란은 매우 흥미롭다.
이 희극작가에 대한 전기적 세부 사실들은 대부분 수에토니우스라고 하는 로마의 전기 작가가 테렌티우스가 타계한 후 집필한 '테렌티우스의 생애'에서 밝혀진 것이다. 수에토니우스에 의하면 테렌티우스는 본명이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 아페르'이고 카르타고 태생이며, 노예의 신분으로 로마에 흘러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또 수에토니우스는 테렌티우스의 생김새를 묘사하면서 '검은 피부'라고 기록하고 있는 데, 이를 근거로 그가 아프리카 흑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자의 끝에 사용하는 아페르는 북아프리카를 가리키는 말로 라틴어로는 통상 리비아에서 온 사람임을 나타낸다.
이러한 논란은 최근 들어 로마 문화의 업적을 이룬 근본이 유럽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온 외래인인 것으로 규정하고 싶어 하는 역사가들이 늘어나면서 더욱 쟁점화되고 있다. 그러나 '테렌티우스'라는 저서에서 월터 포핸드는 테렌티우스가 아프리카 흑인이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음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논란들은 많은 시대의 전기 작가들이 자신들이 다루는 작가들의 생이를 채색하여 한층 흥미로운 인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테렌티우스가 카르타고나 리비아로부터 온 사실을 수긍할 수 있지만, 아프리카 흑인원주민들이 거주했던 그 지역의 남부나 동부 출신은 아닐 것이라고 역설한다.
테렌티우스가 아프리카 흑인 노예 출신인지의 여부와 그러므로 그가 서양 연극사상 최초의 흑인 극작가인지의 진위는 쉽게 가려질 문제가 아니다. 포핸드가 언급했듯이, "흥미롭게도 그 문제 자체만큼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전기적 자료들로는 아무런 대답도 얻어내기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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