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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비극 작가 '세네카' 그의 작품에 대해서카테고리 없음 2024. 2. 3. 20:01반응형
1. 세네카
현존하는 작품을 가지고 있는 로마의 주요 비극작가는 세네카이다.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지만, 일반적으로 그는 네로 황제의 선생이었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생각된다.
세네카의 생애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작가로서 그는 근엄한 스토이시즘(실천도덕에서 희열이나 비애의 감정을 억압함으로써 평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운명을 감수하는 인생관)의 신봉자로 절제와 평온의 철학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면, 그는 미식가요, 스토아(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까지 이어진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한 학파) 철학에서 엄격히 금하는 고기를 즐기는 등 쾌락을 탐하는 자였다.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그가 살던 당시의 로마 시대의 특성을 투영하는 듯하다.
세네카는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로마로 오게 되었다. 로마에 온 그는 스토이시즘에 대한 글을 쓰기 전과 정치가의 길에 입문하기 전까지 많은 철학자들과 교분을 두텁게 쌓았는데, 그중에는 채식주의를 신봉하는 철학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기 32년에 그는 주목받는 연설가가 된다. 로마의 미치광이 황제로 유명한 칼리굴라는 세네카의 신기에 가까운 연설을 너무 시기한 나머지 그를 처형할 궁리 끝에 결국 실제로 유배지에서 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네카에게 2년간의 추방형을 내린다. 세네카는 후에 클로디우스 황제의 부인이었던 메살리나에 의해 7년간의 추방형을 당하게 되는데, 그의 표면적인 죄목은 황제의 조카와의 불륜으로 되어있지만 실상은 아마도 정치적인 이유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49년 세네카는 클로디우스의 새 부인이 된 아그리파에 의해 로마로 되돌아와서 그녀의 아들인 네로의 선생이 된다. 훗날 네로가 장성하여 황제가 된 서기 43년에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주요 섭정관 중의 일원이 되어 향후 5년간 정부 관직을 두루 거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서기 62년에 권좌의 핵심에서 밀려나게 된 세네카는 황제의 어명을 받고 자살하게 된다(통치자나 법원의 명으로 죄인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일종의 관습이었다).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는 죽는 순간까지 철학을 논하며 차분하게 어명을 받아들였다.
2. 세네카의 작품
세네카의 작품 중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아홉 편뿐이다. '트로이 여인들', '메디아', '오이디푸스', '페드르', '티에스테스', '오데타의 허큘레스', '미친 허큘레스', '페니키아 여인들', '아가멤놈'. 이 아홉 편의 로마 비극들은 모두 그리스 신화를 기저로 하고 있다. 세네카의 작품들이 무대 공연용으로 쓰인 것인지, 아니면 왕족들이나 귀족들이 참석한 연회 따위의 특별 행사 때 암송용으로 주로 쓰인 소위 '서가연극' 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하다.
표면적으로 보면 세네카의 연극들은 그리스 비극들과 매우 흡사하다. 그리스 전설 등을 각색하여 플롯을 짰고, 또 그리스 비극처럼 코러스도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네카의 비극은 매우 독특한 면이 있다. 세네카가 사용한 코러스는 직접 연기에 뛰어들지 않으며, 그리스 극작가들과는 달리, 세네카는 폭력장면을 강조하여 그리스 비극에서는 무대 밖에서 처리되는 살인, 칼싸움, 자살 등 끔찍한 장면들이 세네카의 작품에서는 무대 위에서 종종 버젓이 연출된다. 예를 들어 '티에스테스' 같은 작품의 경우, 작품의 주인공인 티에스테스는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아이들의 살을 뜯어먹고 피를 마신다. '오이디푸스'에서는 무대 위에서 요카스타가 자신의 자궁을 도려내는가 하면,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폭력장면에 대한 이러한 흥미는 물론 후대의 역사적 사건과도 연관성을 갖는 것이다. 오늘날 끔찍한 장면들이 여과 없이 그대로 방영되어 폭력물로 구분되는 수많은 서스펜스 영화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나 '새'와 같은 영화는 예술성도 겸비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아무튼 도끼로 찍어 죽이기, 사람이 맹수에 잡아먹히는 장면 등과 같은 끔찍한 장면들은 인간의 사악심과 더불어 방만(맺고 끊는 데가 없이 제멋대로 풀어져 있다)하게 팽창하게 되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세네카는 끔찍한 폭력장면을 직접적으로 개척하지는 않았고, 대신에 그는 폭력장면들을 주제에 결부시키거나 등장인물들의 비극적 상황 등에 연관시켰다.
세네카의 비극들이 그리스의 그것들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성은 세네카의 등장인물들에게는 비극적 결함이 없다는 점이다. 그 대신에 그들은 과도한 감정에 사로잡혀있다. 예를 들어 '티에스테스'에 등장하는 아트레우스는 복수의 일념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세네카의 등장인물들은 한 가지 동기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고급 멜로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덤처럼 등장하여 이러한 멜로드라마적인 특성을 강화시킨다. 세네카의 대본에는 대개 장문의 자세한 독백이 삽입되어 있고, 등장인물들의 입에서는 도덕적인 격언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비록 세네카의 인기는 그리스 비극 극작가들과 견줄만하지 못했지만, 후대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라틴어로 씌어져 후대의 학자들이 그리스 황금시대의 작품들보다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세네카의 비극들은 르네상스 극작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가 고안한 5개의 에피소드들 사이사이에 코러스의 송부를 끼워 넣은 구조는 후대에 기본이 된 5막 구조의 효시가 된다. 세네카 비극의 요소로 후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 것들로는 유령이나 마녀들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등장,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끔찍한 폭력장면, 그리고 독백과 방백의 사용 등을 꼽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도 세네카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극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대표작인 '햄릿'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햄릿부왕의 유령, 독백과 방백의 사용, 그리고 무대 위에서의 끔찍한 장면 등은 세네카의 유혈복수비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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