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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카테고리 없음 2024. 1. 25. 01:23반응형
소포클레스는 아에스킬루스가 이룩한 각종 극작술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켰다. 그는 특히 매우 정교하게 짜인 극의 플롯 구조로 유명하다. 그는 매우 능숙하게 등장인물들과 사건 경위 등을 소개해주고 나서 곧바로 클라이맥스로 몰고 간다.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비극론을 위하여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성격을 탐구하는 수법은 소포클레스 연극 작품들의 주요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대사를 이루는 시구들도 그 아름다움과 명료한 표현으로 널리 칭송받는다.
소년 시절 소포클레슨느 페르시아에 대한 아테네의 살라미스 대첩 축하의식에서 공연했다. 성인이 되어 그는 극작가로 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자신의 초기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가 극작가로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것을 기원전 468년 열린 경연 대회에서 아에스킬루스를 물리치면서부터였다. 소포클레스는 그의 첫 작품부터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로 수년 동안 그는 적어도 백 편 이상의 연극작품을 썼고, 18번이나 우승을 했으며, 단 한 차례도 이등 이하로 내려간 적이 있엇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를 무대장치 채색의 진정한 창안자로 꼽는다. 소포클레스는 비극의 코러스의 수를 12명에서 15명으로 늘였고 그리스 비극에 제3의 배우를 소개한 장본인이다. 연극에서 등장인물의 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줄거리 전개와 등장인물 상호 간의 갈등 등의 표현에 보다 확장된 가능성들을 열어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세 편의 연관된 작품들을 삼부작으로 묶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일부작을 선호했다. 이로 인해 플롯 상에는 더 많은 액션이 첨가될 수 있었다. 오늘날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긴 작품 '오이디푸스 왕' '안티코네' '콜로너스의 오이디푸스'는 때때로 세 작품 모두 한 가족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삼부작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작품들은 원래 각각 다른 삼부작들의 한 부분으로 쓰였고 공연된 별개의 작품들이다.
소포클레스는 장군으로, 사회지도자로, 대사로, 그리고 사제로 그리스의 황금시대 동안 아테네의 사회행정 전반에 걸쳐 두루 관여했다. 그는 아테네 근방 콜로너스에서 부유한 아테네의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도시국가 아테네에 헌신하여 외국 왕들의 빗발치는 수많은 귀화요청들을 물리쳤다. 그는 기원전 406년 90세의 일기로 사망하여, 그의 사랑하는 조국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망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의 긴 생애를 통해 그는 '개구리'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소포클레스가 남긴 작품은 120여 편에 이르지만 그 중에서 7편의 비극만이 현존한다. '에이작스' '안티코네' '오이디푸스 왕' '엘렉트라' '트라키니애' '필록테테스' '콜로너스의 오이디푸스' '추적자'의 일부분을 포함하여 그의 사티로스극 중의 일부 또는 대부분이 남아 있는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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